“산업안전보건법에 상담사 보호조치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고객응대근로자 보호를 위한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된 지 약 5년, 그리고 그 개정법이 시행된 지 약 3년이 흐른 지금 이 문장은 이제 일상의 한 부분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사회가 ‘손님이 왕이다’라는 암묵적인 전제 아래 일부 고객의 ‘갑질’이 횡행해 왔음을 인지하고 근로자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증거로 보입니다.
항공사 객실 승무원이나 공동주택 경비원 등의 고객응대근로자는 상당 수준 이상의 업무시간을 ‘감정노동(자신의 감정과 관계없이 사업장에서 요구하는 감정과 표현을 고객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노동)’으로 보냅니다. 이는 다시 말해 고객응대근로자가 고객의 비정상적이며 비합리적인 요구나 서비스를 예약한 뒤 아무런 설명 없이 당일에 나타나지 않아 경제적 손해를 입히는 ‘노쇼(예약부도)’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노력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고객응대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과 조치를 명문화한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는 기본권과 평등권을 침해하는 갑질의 마침표를 찍는 첫발자국으로서의 의미를 지닙니다.
하지만 때로는 사업장에서 내놓은 영업방침이 고객의 기본권과 평등권을 침해하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사업장에 방해가 된다거나 위험하다는 이유로 특정 집단의 출입을 막는 ‘노 ○○존’이 들불처럼 번지는 현상은 한국 사회의 쟁점 한가운데 있습니다.
영업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자 영업방침이므로 불만을 표하지 말아 달라는 사업장의 의견과 합리적 이유 없이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것은 차별임을 지적하는 이의 격돌은 지금까지도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출입을 금하는 ‘노 키즈존’의 방침으로 운영되던 식당이 유명 인플루언서의 자녀 동반은 허용하는 이중적 잣대, 지나치게 긴 매장 이용 시간 대신 “젊으신 고객님들은 아예 이쪽으로 안 오고 있다”고 지적하는 내용의 쪽지를 손님에게 건내 논란이 된 ‘노 시니어 존’ 카페의 경우를 통해 보면 ‘노 ○○존’은 더 이상 문제상황의 해결 방안이 아닌 차별과 배제의 영역으로 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로 읽힙니다.
‘노쇼’로 대표되는 ‘갑질’과 ‘노 ○○존’을 둘러싼 이슈를 종합해 볼 때, 서비스를 제공하는 근로자와 이를 제공받는 고객의 관계는 재화를 매개로 성립되지만, 그 바탕에는 존중과 배려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의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회의 모습은 그보다 무관심과 배제에 가까워 보인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사회란 모두가 앞서 양보하는 사회임을 되새겨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세를 재정비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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